story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걸어온 길

1967~1971

1. 과학기술후원회의 설립

1960년대 중반까지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은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과학기술 진흥 전담기관으로서 ‘과학기술후원회’를 설립키로 했다.

1934. 04. 19 제1회 ‘과학데이’ 기념식
1966. 02. 04 KIST 설립에 관한 한·미 협정 체결

1967년 4월 과학기술처가 발족된 후 1967년 9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후원회 설립취지문’이라는 친서를 장관에게 전달하며 후원회 설립은 가시화되었다. 취지문에는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과학자와 기술자를 우대하고 생활 구석구석까지 과학기술이 스며드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67. 09 과학기술후원회 설립취지문

과학기술후원회는 같은 해인 1967년 12월 병리학 분야의 1세대 의학자 윤일선 박사를 초대 위원장으로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설립 직후 후원회는 국내 과학기술자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고 정년퇴직한 과학기술자의 후생복지를 위해 지원 대상자를 선정했다. 이를 통해 1968년 과학의 날 행사에 대한민국과학기술상을 비롯한 포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후원회는 1969년부터 과학기술자에 대한 지원 사업을 좀 더 체계화해 연구활동 지원과 유공과학기술자 지원으로 구분해 추진했다. 연구활동 지원은 현직에서 활동 중인 과학자나 기술자 중에서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공을 세운 이들을 선정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했다.

1968. 04. 21 제1회 과학의 날 기념식

또한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딛은 것을 계기로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방송좌담회를 개최하고 생활의 과학화, 산학협동 안내, 자문활동 수행 등의 활동도 수행해 나갔다. 아울러 과학기술처의 도움 아래 특허출원에 대한 보상과 과학기술 아이디어를 포상하는 활동도 함께 추진했다.

1970년대의 개막과 함께 후원회는 정부의 새마을운동 추진과 맞물려 국민의 생활 속에 남아 있는 비과학적인 요소를 개선하는 생활의 과학화와 과학적 풍토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이 시기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과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으며, 정부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새마을운동의 가시적 성과는 국민들이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원회는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나아가 생활 속에서 과학화 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설립 직후 주요 사업으로 시작된 유공과학자 지원과 연구 활동 지원 외에 과학도서 출판 보급, 과학프로그램 TV 방영과 같은 과학기술계몽 사업을 서서히 전개해 나간 것이다. 아울러 조직 정비와 기금 확보, 우수인력 확충과 미래 지향적인 사업계획 수립 등 조직의 미래 발전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에도 역할을 충실히 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후원회는 전 국민 대상의 생활 과학화 운동의 일환으로 1971년부터 과학서적의 출판·보급 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과학의 생활화사업과 관련해 전국 각 시·도 각급 학교에 재직 중인 과학주임교사나 담당 장학사들을 대상으로 매년 과학교육 세미나를 개최했다. 또한 후원회는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과학 지식과 과학적 사고를 함양시키기 위해 외국에서 들여온 과학 및 기술 관련 영화를 우리말로 번역해 더빙한 후 전국의 800여 초·중·고등학교에서 순회 상영해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이에 고무된 후원회는 국제 교류를 통해 과학관련 필름을 다수 구입해 라이브러리 형태로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